오늘은 분청사기 문양 기법 두 번째로 귀얄문과 담금법, 철화분청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귀얄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풀이나 옻을 칠할 때 쓰는 솔의 하나’라고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귀얄문은 말 그대로 ‘붓이나 솔로 기물 표면에 페인트 칠하듯 백토를 바르고 붓질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나도록 하는 기법’입니다. 귀얄의 힘있고 빠른 운동감의 자국과 그 사이사이에 백토와 태토의 대조로 문양과 같은 효과를 나타냅니다.

 

 

 

 

귀얄문이 붓으로 칠하는 기법이라면 담금법은 기물을 백토물에 덤벙 담가서 작업하는 기법입니다. 칠하지 않고 한 번에 담가서 전체를 분장한다고 하여 분장분청이라고도 합니다. 굽 밑까지 담그는 경우도 있지만 굽과 그 위 언저리는 담그지 않아 태토와 백토의 대조적인 느낌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담근 부분은 붓질의 흔적이 없고 전면이 고르게 백자같은 느낌을 줍니다.

 

 

 

 

철화분청은 태토위에 백토를 바른 후 철사안료(鐵砂顔料)로 문양을 그린 것을 말합니다. 분청사기 철화문은 충청남도 공주군 계룡산의 동학사 계곡 일대에서만 출토되어 ‘계룡산 분청’이라는 별명이 붇기도 했습니다. 후에 전라남도 고흥군 지역에서도 일부 출토되기도 했지만 철화분청의 대표지역은 역시 계룡산 자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조선조 때 세조가 동학사를 찾아가서 주십이리(周十二里)의 산림을 하사하는 바람에 이 절이 도자기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분청의 문양 기법을 발생 시기에 따라 상감, 인화, 박지, 조화, 철화, 귀얄, 담금 등의 순으로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박지, 조화, 철화문이 귀얄로 먼저 칠한 후에 작업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무엇이 먼저라고 딱히 정의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다만 출토된 유물들의 연대기 자료를 통해 볼 때 대체로 분청 초기에는 귀얄 기법이 박지, 조화, 철화 문양을 표현하기 위한 기본 화장 정도로 사용되었다가 점차로 귀얄이나 분장(담금) 만으로 표현하는 기법이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같은 현상은 도자기의 대세가 청자에서 백자로 서서히 이동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16세기 들어 분청의 표현 양식이 다종다양하게 발전하고 백자와 조화를 이루며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나 임진왜란을 계기로 한 순간에 사라지고 그 후에도 영영 재기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전쟁으로 수많은 가마가 파괴되고 수백여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면서 우리나라의 도자 산업이 말살 된 것은 언제 생각해도 가슴 답답한 일입니다.

 

Posted by 2000가지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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